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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로그

나주 무학당

  • 작성일 2010-01-06 오후 4:50:00

지금은 그 위치조차 희미한 나주 무학당은 광주 대교구 내에서는 유일하게 순교터가 있었던 곳이다.

 

무학당의 확실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 나주 초등 학교 안의 한쪽 화단이 박해 당시 사형 터로 쓰였던 무학당의 원래 터였다고 전해질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그나마 주춧돌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무상한 세월과 함께 후손들의 못난 신앙을 돌이켜보게 한다.

 

나주(羅州)는 전라 남도의 주읍(主邑)으로 옛날부터 크게 번창한 고장이었다. 여기에 정식으로 본당이 설정된 것은 1935년 5월의 일이다. 하지만 나주 본당의 뿌리는 1866년 병인박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무학당에서 얼마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고문 끝에 순교했는지 그 정확한 수나 사연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치명 일기」에 이곳에서 치명한 세 분 순교자에 대한 단편적인 사연들만이 기록돼 있을 뿐이다.

 

그중의 한 분은 전라 복도 용담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교우가 됐다가 정읍에서 체포되어 이곳으로 압송된 것으로 알려진 강영원(바오로)이다. 그는 천주학을 버리라는 강요 속에서도 굳게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내 1872년 3월 9일 백지 사형(白紙死刑)으로 치명했다. 물에 적신 얇은 창호지를 여러 겹 얼굴에 발라 질식케 하는 백지 사형은 그 사형 방법이 간편한 반면에 극심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박해 시대에 여러 곳에서 사용되던 사형 방법이었다.

 

반면 전라 북도 무장, 암틔라는 곳에서 살던 유치성(안드레아)이 강영원과 함께 붙잡혀 나주읍으로 압송됐는데 그 역시 같은 날 처형됐다. 하지만 그는 강영원과는 달리 쏟아지는 돌더미 속에서 머리가 깨지고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기록에 남아 있는 마지막 순교자인 유문보(바오로)는 다른 두 치명자보다 며칠 늦은 3월 15일 나주에서 옥사했다.

 

어느 한 사람 소중하지 않다 할 수 없는 이들 순교자들이 흘린 피 위에 나주 지역의 천주교는 그 터를 닦았다 하겠다. 비록 그 순교 터의 위치는 어느덧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억하는 이도 없이 잊혀졌다 할지라도 그곳 땅과 하늘에 서려 있는 확고한 믿음은 후손들에게 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믿음의 터를 닦은 나주에는 1933년에 와서 임시 공소가 서고 이듬해에는 대지 3천 평을 확보, 임시 성당과 사제관을 준공했으며 1935년에 들어서 비로소 본당이 설정된다.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무학당 순교 성지

 

나주는 천년의 고도요 전남의 주읍(主邑)으로 옛날부터 크게 발전한 고장이었다. 여기에 지금의 본당이 설립된 것은 1935년 5월 나주본당의 첫 본당신부로서 고 하롤드 현대주교님이 부임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실제 나주에 천주교 신앙의 씨가 뿌려진 역사는 1866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시작된 병인대박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병인박해의 와중인 1871년 나주에는 천주교 신자 세 분이 잡혀와 모진 고문 끝에 조선군 병영의 정문인 무학당(武學堂) 앞에서 1872년 순교하셨다는 사실과 그분들에 대한 단편적인 사연들만 교회의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기록물인 <치명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 참혹한 박해시기에 그 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이 곳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장렬하게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수가 정확히 얼마인 지 내용은 알 길이 없고 오직 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을 뿐이다.

 

자랑스런 무학당의 세 순교자들의 이름은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안드레아)이다. 그들이 처형당한 곳으로 알려진 무학당 원래의 터였다고 전해지는 자리는 지금의 나주초등학교 교정으로 추정하며 그 곳에는 무상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아무런 흔적이 없고 오직 무학당의 주춧돌 10개만이 일렬 종대로 남아있어 역사의 자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비록 단편적으로 전해진 세 분의 순교자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신앙은 너무나 훌륭하여 오늘날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귀감이 된다. 그들은 참아 견디기 어려운 혹형 속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천주신앙의 당위성을 용감히 증언했으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온 몸으로 입증하였다. 그리고 연일 계속된 혹독한 고문으로 땀과 피가 범벅이 된 지친 몸의 상태에서도 서로 형제애를 발휘하여 세락의 유혹을 극복하자고 격려해 주었으며 조석으로 신공을 통성으로 바친 기도의 삶을 사신 분들이었다. 모두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박해를 잘 견디어 내며 옥살이 중에 모범을 보이고 심지어 사형집행일을 남기고 남에게 진 빚을 걱정하신 분들이다.

 

특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고통 가운데서도 오로지 천주님과 천상의 삶만을 너무나 그리워했기에 천신과 성인들이 순교자들을 모시러 오는 꿈을 죽음직전에 세 분이 함께 꾸기까지 하신 분들이기도 하다.

 

이 점은 다른 순교자들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점으로 이 모든 이야기는 세 분의 순교자와 같이 잡혀 옥살이를 하다 석방된 순창묵상 사람 최성화(안드레아)와 장성수도 사람 서윤경(안드레아)이 1898년 11월 16일 증언하였고 이 기록이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수록되어 있다.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진실되고 더 숭고하고 더 거룩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참으로 순교자들은 한 분 한 분이 하느님 사랑의 극치를 이루신 분들이다. 예수님을 그대로 닮아버린 분들이다. 그러므로 “순교야말로 선교의 씨앗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에게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을 남을 위해 바친 것보다 더 큰사랑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증거란 없는 것이다. 아, 기막힌 사랑의 봉헌이여! 죽음을 초극한 사랑의 용기여!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길래 그렇게도 그들은 중요하게 생각했던가! 삶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늘. 그러나 우리 무학당의 자랑스런 순교자들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육정을 끊고 세속의 순간적인 쾌락과 유혹을 기꺼이 버렸던 것이다.

 

세 분의 순교자들의 이와 같은 위대한 삶을 기억하며 추모하고 고양하기 위해 나주 천주교회에서는 2004년 나주본당 70주년을 맞아 무학당의 세 순교자 현양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현양의 장소는 나주 천주교회 안에 두기로 하고 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무학당 순교 터는 광주대교구의 유일한 순교성지요, 순교정신을 함양하는 일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므로 우리는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신앙의 후손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이다. 순교자 현양사업은 많은 기도와 재원이 따라주어야 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 역사적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전 교구민들과 뜻 있는 모든 이들의 나주무학당 순교성지조성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물심양면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130년전 이 나라가 어둠과 불신의 늪에 빠져 절망할 때 민족구원의 제단에 한 목숨 바치신 무학당의 위대한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이 오늘날 민주와 인권의 빛고을을 새롭게 비추는 신앙의 횃불로 거듭나게 해야 하겠다.

 

그리하여 이 불이 참된 선교의 불길로 장렬하게 타올라 이 지역에 그리스도의 진리와 평화를 전하고 이 지역민들에게 희망의 불기둥이 되어야 주어야 하겠다. 마침내 순교자들의 후예인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의 이런 간절한 기도와 염원은 잊혀질 뻔했던 무학당의 세 순교자들을 복자의 품에 오르게 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위대한 한국 순교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여 신앙의 큰 은총과 영광을 보게 될 날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지금은 꿈과 같이 여겨지겠지만 모든 이들이 같은 꿈을 꾸면 그 일은 반듯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그 꿈을 꾼다. [출처 : 나주 무학당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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